청소년·학교

거식증 아이가 운동을 멈추지 않을 때, 식사보다 먼저 보이는 신호

·읽는 데 약 6분 ·심리상담 맘블리

밥은 먹습니다. 아주 안 먹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이가 방에서 스쿼트를 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꼭 나갔다 오고, 하루라도 거르면 안절부절못합니다. 먹는 양보다 먼저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거식증을 떠올릴 때 많은 분이 먼저 보는 건 체중입니다. 숫자가 줄어야 문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상담에서 부모님들이 뒤늦게 기억해내는 장면은 대개 다른 쪽입니다.

저녁을 먹고 바로 일어나던 것, 계단으로만 다니겠다고 한 것, 밤마다 방에서 쿵쿵 소리가 나던 것. 그때는 그저 운동 좀 하나 보다 했습니다. 건강해 보이기까지 했으니까요.

안 먹는 것보다 먼저 늘어나는 것들

식사량이 눈에 띄게 줄면 누구나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그 부분은 오래 숨깁니다. 대신 통제감을 다른 곳에서 얻습니다. 움직이는 양, 먹는 순서, 먹는 시간, 먹고 난 뒤의 규칙 같은 것들입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은 혼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칭찬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더 안전한 통로가 됩니다. 운동이 즐거워서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하는 상태가 조용히 자리를 잡습니다.

이런 모습이 보인다고 해서 바로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즐거움'과 '불안'은 꽤 다른 얼굴을 합니다. 아이가 운동을 못 한 날 어떤 표정인지를 보면 조금 보입니다.

  • 비가 와서 못 나간 날, 평소보다 말수가 줄고 예민해집니다
  • 먹은 음식을 기억했다가 그만큼 움직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 가족 식사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설거지나 심부름을 자원합니다
  • 아파도, 생리통이 있어도 운동을 거르지 않습니다
  • 칼로리나 성분표를 외울 만큼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 거울 앞에서 특정 부위만 반복해서 확인합니다

몇 개가 해당되면 위험하다는 식의 선은 긋지 않으려 합니다. 중요한 건 개수가 아니라 아이의 하루가 이 규칙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는가입니다.

왜 먹는 일에 마음이 걸리는가

십대는 몸이 한꺼번에 변하는 시기입니다. 어제까지 맞던 옷이 안 맞고, 친구들과 나란히 섰을 때 차이가 보입니다. 그 변화는 본인이 고른 게 아닙니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몸에서 일어납니다.

동시에 성적, 친구 관계, 진로처럼 뜻대로 안 되는 일이 겹칩니다. 그 가운데 먹는 일은 유일하게 자기가 정할 수 있는 영역처럼 느껴집니다. 조절이 되는 곳을 찾아간 셈입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살을 빼려고 해"라는 질문은 잘 닿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이건 외모 문제만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든 쥐고 있다'는 감각의 문제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살이 찌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무서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부모가 하기 쉬운 말, 아이에게 닿는 말

걱정이 커지면 말이 급해집니다. 급한 말은 대개 체중과 음식에 집중됩니다. 그런데 그 지점은 아이가 가장 방어가 단단한 곳입니다. 거기서 부딪히면 대화가 바로 닫힙니다.

자주 하게 되는 말닿을 가능성이 있는 말
한 숟갈만 더 먹어요즘 밥 먹는 게 좀 불편해졌어?
그 정도면 마른 거야거울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해
운동 좀 그만해운동 못 하는 날은 어떤 기분이야?
왜 자꾸 말라가려고 해요즘 뭐가 제일 마음대로 안 돼?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엄마가 말 꺼내면 불편할까 봐 조심스러워

오른쪽 말들이 정답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차이는 하나입니다. 왼쪽은 아이를 고치려는 말이고, 오른쪽은 아이의 안을 물어보는 말입니다. 묻는 말에는 아이도 답할 틈이 생깁니다.

한 번 물었는데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답이 돌아와도 괜찮습니다. 그 질문은 남습니다. 아이는 나중에 그 문을 기억해냅니다.

식탁을 싸움터로 만들지 않기

가장 피하고 싶은 건 밥상에서 매일 실랑이가 벌어지는 상황입니다. 감시받는 식탁에서는 먹는 일이 더 무서워집니다. 아이는 식사를 피하는 방법을 더 정교하게 배웁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양에 대한 코멘트를 줄이는 쪽이 낫습니다. 대신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시간 자체를 지킵니다. 많이 먹지 않아도 같이 앉아 있는 날이 쌓이면, 식탁이 다시 안전한 곳이 됩니다.

  1. 식사 중에는 음식량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대화 주제는 학교, 드라마, 날씨여도 됩니다.
  2. 아이가 남겨도 지적하지 않고, 먹어도 과하게 반기지 않습니다. 둘 다 아이를 긴장시킵니다.
  3. 식사 시간을 비슷하게 고정합니다. 예측 가능한 리듬이 불안을 조금 낮춥니다.
  4. 가족이 먼저 자기 몸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어른의 다이어트 대화도 아이에게 들립니다.
  5. 체중계를 매일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면 집 안에서 조용히 치워둡니다.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되는 지점

몸이 눈에 띄게 달라지거나, 어지럼과 탈진이 반복되거나, 먹은 뒤 토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마음의 문제만으로 두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소아청소년과나 전문 진료를 함께 보는 쪽이 안전합니다. 판단을 부모가 혼자 떠안지 않아도 됩니다.

지역에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처럼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전화 1388은 아이도 부모도 걸 수 있습니다. 아이가 거부해도 부모 혼자 먼저 상담을 받아보는 것 역시 충분히 의미 있는 시작입니다.

마음이 많이 가라앉아 있거나 위험한 생각이 스치는 것 같다면 미루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정신건강 위기상담 1577-0199, 청소년 상담전화 1388은 밤에도 연결됩니다.

오늘 해볼 수 있는 아주 작은 것

오늘은 아이의 접시를 보지 말고 표정을 봐주세요. 그리고 식사와 상관없는 질문 하나만 건네보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일 괜찮았던 순간이 언제였어?"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 한마디가 바로 아이를 바꾸지는 않습니다. 다만 집 안에 음식 말고 다른 이야기가 흐른다는 걸 알려줍니다. 아이는 그 틈으로 숨을 쉽니다.

그래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고, 밤마다 혼자 검색만 반복하게 된다면 한 번쯤 털어놓아 보셔도 좋겠습니다. 맘블리에서는 아이를 데려오지 않아도, 부모의 걱정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아이가 운동만 많이 하는데 거식증을 의심해도 되나요

운동량 자체보다 하지 못했을 때의 반응을 보시는 편이 도움이 됩니다. 거르면 불안해하고 하루 일과가 운동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눈여겨볼 만합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무엇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식사, 수면, 기분 변화까지 함께 보면서 필요하면 상담을 통해 정리해보는 쪽을 권합니다.

아이에게 살 빼지 말라고 말해도 될까요

체중을 직접 겨냥한 말은 대부분 방어를 부릅니다. 아이에게 이 문제는 외모보다 통제감과 연결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체중 대신 요즘 힘든 일,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을 물어보는 편이 닿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화의 목적을 설득이 아니라 이해로 두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아이가 상담을 거부하면 어떻게 하나요

억지로 데려가면 첫 회기부터 닫힌 채로 앉아 있게 됩니다. 이럴 때는 부모가 먼저 상담을 받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집에서의 대화 방식과 식사 자리 분위기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역 청소년상담복지센터나 1388을 통해 부담 없이 시작해보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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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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