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고 말했다가 후회될 때, 다시 닫히는 입
어렵게 한마디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말이 생각과 달라서, 다음 날부터는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지내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말을 꺼낸 것 자체가 실수처럼 느껴지는 그 밤에 대해 적어봅니다.
말을 꺼낸 다음 날이 더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보통 오래 혼자 품고 있다가 어느 순간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작정하고 상담을 신청한 게 아니라, 술자리 끝에, 혹은 통화 중에 짧게 한 문장으로 새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상대가 놀라서 말을 돌리거나, 반대로 너무 크게 반응해서 상황이 커지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안 그래도 꺼내기 어려웠던 말인데, 괜히 말했다는 후회가 남습니다.
그렇게 한 번 닫힌 입은 다음에 더 무겁습니다. 다시는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결심은 마음이 편해져서 하는 게 아니라, 실망해서 하는 겁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들은 사람도 당황했을 뿐일 때가 많습니다
죽고 싶다는 말을 듣는 훈련을 받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가족도, 오래된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반응이 어긋납니다. 어긋난 반응은 대체로 무관심보다는 당황에서 나옵니다.
- "그런 말 하지 마"라며 서둘러 화제를 돌리는 경우. 들을 자신이 없어서 막은 쪽에 가깝습니다.
- "너만 힘든 거 아니야"처럼 비교로 받는 경우. 위로하려다 말이 어긋난 것입니다.
- 바로 병원이나 기관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 뭐라도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앞선 것입니다.
-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경우. 무시가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멈춘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서운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해하는 것과 괜찮아지는 것은 다릅니다. 다만 '아무도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결론까지는 조금 미뤄두어도 됩니다. 한 사람의 반응이 세상 전체의 대답은 아니니까요.
다시 말하기 전에 정해두면 덜 다칩니다
마음이 힘들 때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큰 말을 꺼내게 됩니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일수록 놀라고, 놀라면 말이 거칠어집니다. 그래서 순서를 조금 바꿔보는 편이 나을 때가 있습니다.
- 무엇을 바라는지 먼저 한 줄로 말해둡니다. "해결해달라는 건 아니고 그냥 듣기만 해줬으면 해" 같은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 전부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요즘 좀 위험한 생각이 든다" 정도로 시작해도 말은 시작된 겁니다.
- 상대가 어긋나게 반응하면 그 자리에서 정정해도 괜찮습니다. "그 말 들으니까 더 막막해"라고요.
-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라, 처음부터 들어주는 일이 역할인 쪽을 택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상담이나 상담전화가 그런 자리입니다.
이렇게 미리 정해두면, 반응이 어긋나도 '말한 게 잘못'이라는 결론으로 빠지지 않습니다. 말은 제대로 했고 전달이 어긋났을 뿐이라고 정리할 여지가 생깁니다.
혼자 버티는 밤을 짧게 만드는 쪽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루 종일 같은 세기로 머물지 않습니다. 대개 특정 시간대에 몰립니다. 잠들기 전, 새벽, 일요일 저녁처럼요. 그 시간을 조금 줄이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결심보다 '그 시간에 뭘 할지' 미리 정해두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생각이 몰려올 때 새로 판단하는 일은 몹시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리 정해둔 것을 그냥 따라가는 정도가 적당합니다.
- 그 시간대에 연락해도 되는 사람 한 명의 이름을 적어둡니다. 실제로 연락하지 않더라도 적어두는 것만으로 다릅니다.
- 방을 벗어나 다른 공간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거실, 편의점, 현관 앞이라도 좋습니다.
- 약이나 도구처럼 위험해질 수 있는 물건은 손이 바로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워둡니다.
- 상담전화 번호를 통화 목록이 아니라 메모장 첫 줄에 적어둡니다.
요즘은 자살예방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다루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나옵니다. 다만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오늘 밤을 지나는 일은 결국 아주 작은 선택들로 이루어집니다.
지금 바로 도움받을 수 있는 곳
지금 생각이 너무 가깝게 느껴진다면, 아래 번호는 밤에도 연결됩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고, 잘 정리해서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 정신건강 위기상담 1577-0199
- 청소년 상담전화 1388
오늘 해볼 수 있는 건 두 가지면 충분합니다. 위험해질 수 있는 물건 하나를 손 닿지 않는 곳에 두는 것, 그리고 번호 하나를 휴대폰 메모 맨 위에 적어두는 것. 그다음에도 말을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막막하다면, 맘블리에서 그 한 문장부터 같이 정리해봐도 좋습니다. 처음부터 다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죽고 싶다고 말했는데 상대가 화를 냈어요. 제가 잘못한 걸까요
잘못한 일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듣고 화를 내는 반응은 대개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상대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라서 감정이 먼저 튀어나온 것입니다. 다만 그 반응 때문에 더 힘들어졌다면, 다음에는 가까운 사람보다 들어주는 일이 역할인 쪽을 먼저 찾아보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실제로 실행할 생각은 없는데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도 상담을 받아야 하나요
실행 의도가 없어도 그 생각이 반복된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힘든 상태입니다. 상담은 위험이 아주 높은 사람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생각이 언제 찾아오는지, 그때 무엇이 조금 도움이 되는지를 같이 정리하는 자리로 쓰셔도 됩니다. 기다렸다가 나빠진 뒤에 가는 것보다 수월합니다.
가족에게는 절대 알리고 싶지 않은데 상담이 가능한가요
성인의 경우 상담 내용은 원칙적으로 비밀이 유지됩니다. 다만 생명에 직접적인 위험이 확인되는 상황처럼 예외가 있을 수 있어, 첫 상담 때 그 범위를 미리 확인해두시면 마음이 편합니다. 알리고 싶지 않다는 말 자체도 상담에서 꺼내도 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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